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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SSF) '파리지앵(Les Parisiens)'

by 신푸른솔 2013.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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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체임버홀. 내 자린 2층이었다.


 작년에 첼로를 전공하는 친구 따라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에 처음 갔고 이번으로 두 번째다. 작년에 본 프로그램은 ‘드뷔시 & 인상주의(Debussy & Impressionism)’이었다. 드뷔시의 현악 4중주는 스승님이 드뷔시안(?)이라 많이 듣게 되었던 것 같다. 졸음이 오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신선(하프가 들어가는 실내악 작품이 2개나 있었다.)했고 좋아하는 곡을 들을 수 있어서 꽤 즐기고 온 것 같다.


 올해에도 몇 가지 공연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지만 5월 24일(금)은 서울시향 공연과 겹치고, 주말엔 커피를 타니까 안 되고 해서 갈 수 있는 공연은 오늘 공연뿐이었다. 프로그램의 컨셉은 ‘파리지앵’으로 모차르트 플루트 4중주, 프로코피에프 5중주, 카사도 피아노 3중주, 드뷔시 랩소디 1번, 그리고 라벨 피아노 3중주로 구성되었다.


 내가 기대하고 간 공연은 드뷔시 랩소디와 라벨 피아노 트리오였다. 특히 라벨의 피아노 트리오는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다가 프레디 캠프(피아노), 나탈리 굿먼(첼로), 알렉산더 카간(바이올린)의 연주자들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곡을 리히터, 나탈리 굿먼, 올레 카간의 3중주의 음반으로 들었었는데 나탈리 굿먼과 올레 카간 사이의 아들 알렉산더 카간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바이올린을 잡고 이번 공연에서 연주한다니 느낌이 신선했다.


 첫 곡인 모차르트 4중주는 단 한 번 예습하고 들었는데, 모차르트의 곡이라서 그런지 기분 좋게 들렸다. 이 연주에서부터 첼로를 맡은 제롬 페르노(Jérôme Pernoo)씨의 연주가 참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첼로의 유명한 대가들처럼 활 긋기 소리가 맑고 청아하진 않았지만 실내악에서의 베이스를 잘 잡아준다고 해야 할까. 밸런스가 좋다고 할까. 여하튼 계속 듣기 좋은 소리를 내주어 참 즐겁게 들었다.


 다음 곡인 프로코피에프 5중주는 약간 힘들었다. 예습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인지 즐기기가 쉽진 않았다. 한 번 듣긴 했는데 글을 쓸 때 배경음으로 깔아놓고 집중해서 듣지는 않았다. 악기는 오보에, 클라리넷, 바이올린, 비올라, 더블베이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첼로 대신 더블베이스가 들어가서 신선하긴 했던 것 같다. 더블베이스의 묵직한 솔로 파트를 오랜만에 들어서 재미있긴 했다.


 다음 곡은 카사도의 피아노 3중주이다. 약간 생소한 작곡가라 그랬는지 곡을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해설이 있었다. 마이크는 아까 모차르트 4중주에서 첼로를 맡은 제롬 아저씨가 잡았다. 대충 요약하면 프랑스 작곡가들은 스페인 곡들의 특징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랄로(스페인 교향곡)나 라벨(볼레로) 등을 예로 들었던 것 같다. 카사도도 그런 작곡가들의 한 사람으로 피아노 3중주에서 스페인의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또 카사도가 첼리스트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연주자들은 연주만 작곡가들은 작곡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도 이야기했다. 제롬 아저씨가 영어로 한 말에 비해 피아니스트 김영호씨의 통역은 짧아서 한국어는 참 요약적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잠깐 동안의 해설은 프로코피에프에서 약간 지친 나를 다시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스페인풍의 정열적인 도입부는 해설을 들은 사람들을 카사도의 음악에 빠져들게 했던 것 같다. 짧은 통역으로 웃음을 주었던 김영호씨는 피아노 앞에 앉자 열정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카사도의 곡 분위기와 맞게 붉은 드레스를 입었던 바이올린의 이경선씨와 흰 머리가 약간 섞인 교수님의 모습으로 상상할 수 없는 생동감 있는 터치의 김영호씨, 그리고 연주 내내 즐거운 표정을 짓던 제롬 아저씨, 세 명의 연주는 즐거운 만큼 아쉽게 끝이 났다.


 인터미션엔 잠깐 나와서 무료로 제공되는 보리차를 한 잔 마시고 바람을 좀 쐬다가 들어갔다. 드뷔시 랩소디 1번. 나는 제임스 캠벨과 글렌 굴드의 합주 영상으로 예습을 했었다. 이 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들으면서 느낀 점들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클라리넷도 이런 표현을 할 수 있구나... 정도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멍하니 듣다보니 금방 끝이 났다. 집중을 못했나 보다.


 다음 곡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공연이다. 프로필 사진과는 차이를 보이는 나탈리 굿먼의  육중한 덩치에 상당히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숨을 죽였다. 프레디 켐프형의 피아노 분산화음을 시작으로 라벨 실내악 특유의 분위기를 끝까지 잘 이끌어 갔던 것 같다. 강하게 치는 부분에서 머리를 휘날리고 몸이 의자에서 약간 떨어졌다 내려오는 프레디 켐프형의 특기는 여전했다. 악보만 보지 않고 알렉산더 카간을 조심스레 바라보며 맞춰주려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육중한 덩치에서 나오는 나탈리 굿먼의 강인한 첼로 소리도 기억에 남는다. 4악장 시작할 때 바이올린의 분산화음에서 미스가 난건지 난 것처럼 들린 건지 프레디 켐프형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난 2층 왼쪽에 앉아 알렉산더 카간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 이후로 얼마동안 바이올린 소리가 약간 자신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소리(물론 다른 소리를 내야하겠지만)를 냈다. 4악장 중반부터는 다시 밸런스를 되찾아 좋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은 오늘 공연 중에 가장 열성적으로 박수를 쳐주었다. 마지막이라서 그랬나? 여하튼 그렇게 열심히 쳤지만 앵콜은 없었다. 여운을 뒤로한 채 공연장을 나왔다. 전체적으로 좋았지만 해설을 들어서 인지 카사도의 피아노 트리오를 가장 즐겼던 것 같다. 바이로이트 축제에 관한 글을 쓰기 전에 후기를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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