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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12 바투 동굴(Batu caves)

by 신푸른솔 201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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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알라룸푸르 북쪽에 위치한 거대한 동굴로 인도를 제외하면 규모가 가장 큰 힌두교의 성지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힌두교 성지보다는 야생원숭이가 궁금해서 바투 동굴을 찾았다. 여러 글에서 본 것처럼 야생원숭이가 막 돌아다닌다. 호기심 많은 원숭이, 공격적인 원숭이, 새끼를 달고 다니는 원숭이, 덩치가 커서 고릴라 같은 원숭이 등 다양한 원숭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바투 동굴 가는 법은 간단했다. Mid valley에서 KL Sentral까지 간 다음, 열차를 갈아타고 종점까지 가서 내리면 되었다. 전철에 탑승하고 자리에 앉아 창문을 보니 새로운 여행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끔씩 잃어버린 폰이 생각나면 상실감에 젖기도 했지만. 여하튼 그렇게 청승을 떨다보니 종점인 Batu caves에 금방 도착했다. 


KL Sentral ~ Putra 어디서 갈아타든 상관없다.


 역을 나오면 절벽이 보이는데 이 절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좀 돌리면 엄청나게 큰 동상을 볼 수 있다. 이는 힌두교의 전쟁과 승리의 신 무루간의 모습이라고 한다. 바투 동굴의 입구가 그 뒤에 있다하니 찾아가기는 쉬운 듯하다. 좀 걷다보니 원숭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에 그냥 돌아다녀서 약간 당황하긴 했는데 신기했다. 바투 동굴을 향해 걷다보니 근처에 작은 과자를 파는 곳이 많았는데 원숭이가 좋아할 것처럼 생기기도 했고 그걸 노리고 판매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판이 근처에 있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의 손엔 그 과자가 든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멋진 절벽과 힌두교의 신 무루간(Murugan)


 바투동굴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동상 앞에서 모든 사람이 찍을 것 같은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계단은 의도적으로 272계단이고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 272가지를 의미한단다. 또 이 계단은 3줄로 나뉘어져 있는데 과거, 현재, 미래의 3가지 시간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알든 말든 이 계단을 오르는 일은 힘들다. 덥기도 하고.


저기 가면 누구나 저 사진 한 장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272계단.


 원숭이는 길거리에도, 계단에도 그리고 동굴에도 계속 있긴 한데 계단에서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어 나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한 원숭이를 무의식적으로 쓰다듬었는데 ‘키야야약’ 정도의 소리를 내며 나에게 이빨을 내밀며 위협했다. 얘들은 은근히 난폭한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먹이를 주면 슬쩍 가져가면서도 기회를 포착하면 놓치지 않고 비닐봉지째로 과자를 가져가버리는 애들이다. 난 안경을 뺏길까봐 살짝 겁이 났다.


미소를 지으니 도망가는 원숭이. 비닐봉지째로 과자를 먹는 친구.


 계단을 다 올라오니 동굴 입구가 나왔다. 동굴이지만 안이 그렇게 어둡진 않았다. 등도 있었고 천장이 뚫린 곳도 여러 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바투 동굴은 기본적으로 종유 동굴(석회 동굴)이기에 종유석이 군데군데 많이 있다. 동굴 안은 힌두교 성전 같은 느낌이 강했다. 절 비슷한 건물들이 많았고 어떤 곳에는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종유 동굴의 모습 말고는 별로 멋진 것이 없었기에 다시 되돌아 나왔다.


이런 경치가 멋지긴 해.


 동굴을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는데 오른쪽에 뭔가 다른 동굴이 더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서 가보니 방금 보고나온 동굴과는 달리, 이 동굴은 사람에 의해 개발되지 않고 거의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동굴 안쪽은 깜깜해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름도 Dark cave인데 가이드가 설명해주면서 이 동굴 안을 설명해주는 투어가 있었다. 별로 재밌어보이진 않았지만 그냥 한 번 해보기로 했다. 1인당 35RM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절대로 안할 것 같다.


돈을 지불하면 이걸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비싸!


 신청을 하고 기다리니 먼저 갔던 팀이 작은 불을 밝히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우리 차례다. 동굴에 들어가서는 이 동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어떤 벌레가 사는지 등을 알려주었다. 이런 건 흥미가 없어 흘려들었다. 이렇게 큰돈을 내고 징그러운 것들을 봐야한다니. 박쥐의 경우는 한 번 보고 싶었는데 한 50m 떨어진 곳에서 보여줬다. TV로 보면 좀 더 정확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가지 라이브로 즐긴 것은 박쥐의 찍찍 거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동굴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 투어를 하지 않길 바란다.


 동굴에서 나오니 햇살이 많이 약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덥지는 않았지만 경사가 워낙 가팔라서 무서웠다. 후덜거리면서 내려갔던 것 같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바투 동굴을 구경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1~2시간을 낭비한 것과 슬픔이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나의 정신 상태 때문에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파른 경사 그리고 엄마와 아기 원숭이


 앞에 말했듯이 Batu caves역은 종점이기에 자리는 많았고 앉자마자 기절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으니 피곤한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정신적 스트레스도 있었을 테니. KL Sentral까지 깬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잤다. Mid valley에 도착한 후에는 근처 Mega mall이라는 대형 마트로 향했다. 친구는 내일 귀국해야 했기에 한국에 가져갈 말린 망고를 몇 개 샀고 나는 MILO 가루를 조금 샀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난 뒤, 나의 상실감을 일기에 담았다. 그러니 약간 마음이 괜찮아진 것 같았다. 일기와 고통을 나눈 셈인가. 나는 이제 WI-FI를 사용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친구 핸드폰을 빌려 couchsurfing에 접속한 후, 나를 재워준다는 현지인의 연락처를 수첩에 적었다. 논술도, 작곡 시험도 컴퓨터로 입력하자고 주장하는 내가 수첩에 적고 있다니... 정말 비극이었다. 내일 그 현지인 집에 가기로 했으니 확인할 겸 전화를 하러 로비로 내려갔다.  거의 처음으로 하는 영어통화였기에 뭐라 말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같은 문장을 서너 번씩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여튼 별다른 문제는 없고 내일 다시 전화하기로 했다. 괜찮을까?


슬프고 공허하다. 그러했다. 2012년에 아날로그 연락처라니.


 전철에서 잔 것으론 부족했는지 침대에 누우니 이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서의 3일째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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