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지쳐서 밖으로 나오니 어젯밤에 천둥번개를 치며 요란하게 비를 쏟아냈던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푸른 하늘만 남아있었다. 여기의 태양은 한국에서의 태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햇살을 내뿜는다. 난 마치 비를 피하는 것처럼 태양을 피해 그늘로만 이동했다. 우리나라처럼 습하지는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괜찮았던 것 같긴 하다.
양지와 음지의 차이
호텔의 조식을 대충 먹고 배 시간을 물어보니 오전 8시, 정오, 오후 4시에 배가 있다고 한다. 한 10시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이 섬에서 더 이상 놀 것이 없다고 판단하기도 했고 어제 하루 종일 바다에서 논 것으로 몸도 피곤하여 정오에 오는 배를 타고 섬을 나가기로 했다. 씻고 준비를 하니 이내 배 시간이 되었고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탔다.
선착장이 해변에 있어 물이 들어오면 거의 잠긴다.
30분이 지루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시원해서 좋았던 것 같다. 쿠알라 베숫(Kuala Besut)에 무사히 도착했다. 자. 이제 버스를 타고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야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매표소가 들어선 부스들은 대부분 문이 닫혀있었던 것이다. 휴일인가?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버스는 밤에만 있단다. 그 나마 한 곳이 열린 곳이 있어 거기서 표를 샀다. 제일 빨리 가는 것이 오후 8시 30분. 지금은 막 오후 1시가 되려는 시각이었다. 하하.
아무것도 없다. 더워서 얼마 돌아다지도 못했지만.
점심을 먹었다. 중국 식당에 가서 탕수육 덮밥(?)같은 걸 시켜먹었는데 너무 배고팠는지 허겁지겁 먹다보니 사진 찍는 것을 깜빡했다. 뭐. 솔직히 말하면 음식 사진 찍는 것을 즐기진 않는다. 친구는 음료수로 코코넛을 시켰는데 그 맛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별로였다. 일단 별 맛이 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게 더운 날 시원하지도 않은 음료를 마시는 건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속을 파먹으면 맛있다나? 근데 그럴 기운이 없을 정도로 더웠다. 정말. 정말 더운 나라다.
코코넛. 추천하지 않는다. 한국 까페의 코코넛 음료를 드세요!
먹고 나니 시간은 1시가 좀 넘었다. 할 일이 없으니 이 근처를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바다. 아.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동네 염소들? 우리나라였으면 잡아먹혔을 텐데 얘들은 겁도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까페도 찾을 수 없었고 그늘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족해야했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행기를 정리했다.
거리를 노니는 염소와 일기쓰다 셀카
지나다니는 여행객들에게 말도 걸고 그냥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때웠다. 정말 최악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는 것이 없어 편할 것 같지만 더워서 그렇지도 않았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만 의지해 버티는 시간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선선해져 좀 살만해졌다. 그래도 왠지 모를 피곤함에 벤치에 앉아있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얘들은. 쁘렌띠안 섬에 들어갈 때 배에서 보았던 일본애들이었다.
어제 섬에 들어갈 때 우연히 대화를 하다가 다른 곳에서 내려 헤어졌고 오늘 다시 만난 것이다. 이것도 인연이겠거니 싶어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안 되는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대충 되었다. 재밌는 일은 얘들과 같은 버스표를 샀다는 것이다. 물론 우린 1층이고 쟤들은 2층이었지만. 나이를 물어보니 20살이란다. 아. 나는 재수학원에 있었을 나이다. 나도 그 나이 때 여행 왔으면 좋았을 것을.
유쾌했던 친구들. 페북 친구로 등록이 되어있다.
밥 먹고 수다를 떨다보니 시간은 금방 지났다. 얘들이 은근히 한국 아이돌 그룹을 알아서 좀 놀라웠다. 소녀시대라든가. 카라라든가. 물론 멤버들 하나하나는 잘 몰랐다. 나도 관심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소녀시대 멤버들은 이제 다 안다. 카라는 아직. 여튼 이런 젊은 친구들에게서 한류의 힘을 느낄 수 있다니 신기했다. 이즈음이 PSY씨가 막 강남스타일을 발표했을 무렵인데 이상하게 PSY씨 이야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말레이시아를 돌아다니면서 강남스타일을 거의 매일같이 들었다. 거리에서.
8시 30분이 다가와 버스에 탑승했다. 그 일본애들은 2층으로 우린 1층으로 향하면서 헤어졌다. 그 얼음의 버스를 탄다니 두렵긴 했지만 여기로 올 때의 버스보다 지금 탄 버스(KL행)가 좀 덜 추웠다. 그래도 춥긴 하니 에어컨 구멍을 휴지로 막고 수건을 꺼내 덮었다. 하루 종일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더위와 씨름을 한 터라 잠은 금방 올 것 같았다. 내일이 되면 쿠알라 룸푸르에 도착할 것이다. 어디로 갈 건지, 어디서 잘 건지는 전혀 정해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여행에 설레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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