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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11 바가지 택시 그리고 슬픈 이별

by 신푸른솔 2013.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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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6시 즈음.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린다. 창밖을 보니 시내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도착한 건가? 아무리 쾌적한 의자가 있더라도 이동수단에서의 잠은 역시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고 피곤하다. 버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일본 친구들이 내리는 것을 봤다. 얼른 달려가 물어보니 도착했단다. 비몽사몽에 짐을 챙겨 후다닥 내렸다. 


 내린 곳은 PWTC(Putra World Trade Centre)였던 것 같다. 여긴 어딘지도 모르고 정보도 없다. 쁘렌띠안 섬 이후의 계획은 전혀 잡지 않았기에 숙소도 그냥 와이파이 잡히는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잡아서 가려고 했다. 왠지 KL Sentral로 가면 뭔가 길이 보일 것 같아서 가기로 했다. 일본 친구들은 예매해둔 숙소로 이동한다며 중간에 내렸다. 


짧은 거리이지만 환승을 해야한다.


 우린 KL Sentral로 가기 위해서 갈아타려고 Masjid Jemek에 내렸다. 말레이시아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의 환승 개념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냥 갈아타는 것이고 비용 할인도 전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환승표(있기는 하다)를 살 필요는 없다. 말레이시아 전철에 관한 포스팅은 따로 정리하겠다. 그렇게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려는데 택시 아저씨가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다. KL Sentral로 간다고 하니까 3RM에 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잘 되었다. 지하철 값이랑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서 타기로 했다.


 출발하자 기사아저씨가 미터기를 켜는 것이었다. 이상한데? 미터기엔 3RM이라고 표시가 되어있어 그러려니 했다.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니까 상관없겠구나 싶었다. 고가도로를 타고 속도를 내고 머지않아 미터기의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3RM에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3RM부터라는 말이었나??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택시 기사에게 이야기하니 능청을 떨며 원래 35RM 정도인데 미터기를 끄면 30RM에 해주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명백한 바가지였지만 말도 안통하고 지친 상태라 방법이 없었다. 


 KL Sentral에 내리니 휑했다. 호텔 같은 걸 찾으러 한 번 돌아다녔지만 금방 지쳐서 다시 돌아와 맥모닝을 먹었다. 살 것 같았다. 맥도날드는 와이파이도 쓸 수 있어서 근처 호텔을 검색했다. 가격과 위치를 고려해서 적당한 호텔을 찾아보니 Mid valley의 Myhotel이란 곳이 있어서 여기서 묵기로 했다. KL Sentral에는 Budget Taxi라고 목적지를 알려주고 요금을 먼저 지불한 후 택시를 타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에게 바가지를 자주 씌우다보니 생긴 것이 아닐까 한다. 유명한 공공장소에는 Budget Taxi 티켓 판매소가 있는 편이다. 12RM를 내고 Myhotel로 향했고 도착하니 방이 비어있어 바로 체크인이 가능했다. 가방을 던져놓고 침대에 누우니 바로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기절했던 침대와 천장의 끼블랏(kiblat)


 2~3시간 정신없이 자고나니 기분이 개운했다. 책상에 앉아 밀린 일기를 정리하다보니 친구도 일어나서 돌아다닐 준비를 했다. 시간은 12시. 약간의 상의 후 야생원숭이들을 볼 수 있다는 바투 동굴(Batu cave)에 가기로 했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걸어서 Mid valley 지하철역으로 가려는데 카운터에 일하시는 분이 밤에는 오는 길이 위험할 수 있어 택시를 타고 오는 게 낫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해야겠군.


흔한 바투 동굴(Batu cave) 근처 원숭이들


 Mid valley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가 피곤함을 느껴 의자에 앉았다. 서울처럼 열차가 자주오진 않는가보다. 멍하니 열차를 기다리다 아무생각 없이 기차를 탔다. 열차 문이 닫힐 때 지갑과 핸드폰을 챙겼는지 확인하러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이럴 수가!!! 핸드폰이 없다. 아까 의자에 앉았을 때 흘렸나? 아니면 소매치기 당한 건가? 문은 이미 닫혔고 열차는 출발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열차에서 마음이 무너졌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동안 데이터, 전화를 쓸 일이 없어 항상 비행기 모드(데이터와 전화 등 통신을 차단함)로 해놓고 와이파이만 켰었다. 나는 그저 내가 돌아갈 때까지 폰이 내가 앉았던 의자 위에 있기를 바랄뿐이었다.


 KL Sentral에 도착하자마자 내려서 반대 방향 열차를 기다렸다. 조바심 때문에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15분 정도 후에 열차가 왔다. 이때는 거의 포기한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제발. 제발. 제발... 이러다가 지쳤던가. 하긴 걱정이란 감정도 장시간 가지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없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Mid valley로 돌아가는 수준이었다. 지친 마음으로 내가 앉았던 의자를 찾아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휴. 누가 가져갔나보네. 아직 백업해놓지 않은 쁘렌띠안에서의 모든 사진과 영상이 전부 날아갔다. 한국에서 잃어버려도 찾기 힘든데 외국에서 잃어버리다니. Mid valley역 직원에게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이야기를 해놓고 나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바투 동굴(Batu cave)로 향했다.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거고. 찾을 수 없으면 끝이니. 뭐. 그래도 슬펐다.


그 이후 만날 수 없었다. 아아...쁘렌띠안에서의 나의 영상들 ㅠ


 다시 KL Sentral 행 열차를 탈 때였다. 문이 열리고 열차에 탑승하려는데 어떤 멋진 현지인 형이 손으로 주머니를 보호하는 듯이 감싸고 탑승하는 것이었다. 아아. 잃어버리고 나서야 이런 것이 보이는 구나. 나도 앞으로는 훨씬 조심해야겠다. 여권이라도 잘 챙겨야지. 내일 친구가 한국으로 가면 전자기기 없이 말레이시아를 여행해야 한다. 정신을 좀 더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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