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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06 쁘렌띠안 섬으로의 여정

by 신푸른솔 2013.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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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에서 내려 헤매다가 공항을 나오니 외국에 온 것이 실감났다. 습하고 덥고... 그리고 말레이시아 특유의 냄새가 났던 것 같다. 익숙해지기 전의 말레이시아의 색은 잿빛이다. 기억 속은 그렇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낯설었던 그 마음이 내 기억을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어둡고 답답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여행의 막바지의 기억은 색채감이 아주 뚜렷하다.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다녀 피곤했으면서도(심지어 마지막 3일은 발뒤꿈치에 부상을 입어 돌아다니는 내내 절뚝거림) 기억 속의 영상은 아름답기만 하다. 친밀함에 따라 기억이 바뀌나 보다.


멀쩡해 보이는 여행 말미의 나(Putrajaya) 이 사진 역시 셀카


 쁘렌띠안 섬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우선 Putrajaya로 이동해야 했다. 쿠알라 룸푸르 국제공항(KLIA)과 쿠알라 룸푸르 시내(KL Sentral) 구간에는 KLIA Express(transit)라는 고속 열차가 운행한다. 대충 공항 철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가격은 일반 전철에 비해 비싸다. KL Sentral - KLIA간 직행열차는 무려 35RM이나 하니 돈을 아끼고 싶다면 직행열차 말고 다른 열차를 타자.


Express가 급행이니 Transit을 타면 절약할 수 있다.


 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KLIA Express는 출입문 중간의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난 놓친 줄 알고 문 닫힌 열차 앞에서 멍하니 기다렸는데 늦게 온 사람이 날 스윽 보고는 버튼을 누르고 여유 있게 탑승하였다. KLIA에서 Putrajaya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므로 긴장을 놓지 않았다. 이 땐 ‘제발 버스만 제대로 타자.’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내 Putrajaya에 도착했고 제대로 내렸다. 이제 버스표를 구하면 되겠군. 시간은 7시 40분 정도였다. 물어보진 않고 스윽 둘러보면서 Kuala Besut행 버스 매표소를 찾고 있었다. 매표소가 그리 많지 않았으나 버스터미널(Putrajaya Sentral)이 은근 넓어서 좀 돌아다녔던 것 같다. 계속 허탕을 치다가 처음에 들렸던 곳에 다시 들어가니 그제서야 Kuala Besut행 버스표가 보였다. Kuala Besut행을 달라고 하자 9시 출발 표를 줬다. ‘9시 말고 다른 시간은 없나요?’라는 영어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9시 출발 표를 샀다. 그냥 ‘other time?' 정도만 해도 알아들었을 텐데. 


 시간을 보니 8시 조금 넘었다. 9시까진 여유로우니 터미널 안 식당에서 군것질을 하기로 했다. 메뉴를 보니 전혀 상상이 안가서 아무거나 시켰다. 라면 같은 음식을 시켰던 것 같은데 강렬한 향과 입에 자꾸 걸리는 닭의 잔뼈 때문에 먹기가 쉽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서의 첫 음식은 그렇게 실패했다. 먹으려고 노력한 흔적을 남긴 채 식당을 나오니 8시 40분이었다. 이제 슬슬 버스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다리뼈도 뜯기 귀찮아 순살만 시키는데 잔뼈라니!!


 버스들이 모여 있는 1층(매표소와 식당은 2층)으로 내려가서 Kuala Besut행 버스를 찾기 시작했다. 표는 말레이시아어로 적혀있어 잘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봤으나 다들 모른다고 했다. 시간은 8시 50분. 아직은 괜찮다. 함께 온 친구와 흩어져서 물어보기로 했다. 예매를 잘못한 걸까? 다들 모른단다. 이제 곧 9시인데... 식은땀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얼굴이 시퍼렇게 되어가지고 버스터미널을 뛰어다니다보니 이내 9시가 되어버렸다. 큰일 났다. 지금 타지 않으면 우선 오늘 잘 곳이 없는데다가 버스는 내일 밤이나 되어야 탈 수 있고 예매한 숙소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버스터미널 1층의 모습


 절망에 빠진 순간에 어디선가 우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영어로. ‘hey!!!’였나?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가 하도 이곳저곳 물어본 덕에 버스가 출발하려하자 어떤 할머니께서 우릴 불러준 것이다. 감사표시도 제대로 못한 채 허겁지겁 달려가서 버스에 탔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기진맥진한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왜 Kuala Besut에 가냐고 물었고 쁘렌띠안 섬으로 간다고 하니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선택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버스에 타니 몸과 마음이 상당히 편했다. 처음엔 버스 안이 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말레이시아의 강렬한 냉방에 대비하지 못한 나는 이내 추위에 떨어야 했다. 수건을 꺼내서 덮었고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구멍을 닫은 걸로는 모자라 사이의 틈에 휴지를 끼워 거의 밀봉(?)하니 좀 버틸 만 했다. 말레이시아가 정말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냉방을 정말 강력하게 한다. 가벼운 겉옷은 꼭 준비하길 바란다.


 버스는 굉장히 흔들렸다. 거기다 밤이라 시야도 안 좋은데 꼬부라진 산길을 빠르게 가려다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평소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사람도 이 버스를 타면 아마도 매게 될 것이다. 뭐 그래도 내가 무사히 도착했으니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가다가 휴게소 같은 곳에서 좀 길게 쉬는 타임이 있었다. 물론 사전에 안 것이 아니라 버스가 멈추더니 기사 아저씨가 나가서 빨리 돌아오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한 것이다. 얼음의 버스에서 잠시 내려 온기가 가득한 세상에 오니 정말 행복했다. 거기다 편의점에 가서 초코바 같은 걸 사먹으니 몸도 따듯해지는 것 같아 난 생기를 되찾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충 반쯤 오지 않았나 싶었다. 버스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나를 두고 떠날 것 같아서 일찍 탔다. 그 후 한참 있다가 기사 아저씨가 왔는데 다 탔는지 대충 확인하는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다 6시 쯤 되니 쿠알라 베숫(Kuala Besut)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쁘렌띠안 섬(Pulau Perhentian)으로 간다고 하니 따라오라고 해서 그냥 따라갔다. 아무래도 여기에 오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쁘렌띠안 섬으로 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충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가다 보니 여행사 같은 곳이 나왔고 배표를 구입 할 수 있었다.


 배는 8시에 출항한다. 그때 시각은 7시 정도였고 널널했다. 근처의 식당에 가서 토스트와 떼따릭을 주문했다. 떼따릭(teh tarik)은 말레이시아 국민음료 중 하나인데 거의 밀크티라고 보면 된다. 지금 생각하니 약간 다른 점도 있던 것 같다. 여하튼 집에 가져온 떼따릭 믹스로는 현지 떼따릭 맛을 낼 수 없으니 가서 많이 마셔두자. 국민음료(떼따릭, 마일로)를 시키면 은근히 싱글벙글한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식혜를 시키면 우리가 저럴까나. 그런 느낌이겠지 뭐.


말레이시아에서 마지막 날에 마셨던 KLIA의 떼따릭(teh tarik)


 밥을 먹다보니 깜깜했던 밤에서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보이진 않았지만 수평선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상태였다. 토스트를 먹는데 야생 고양이들이 우리 테이블 근처를 돌아다녔다. 우리나라였으면 벌써 도망갔을 텐데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의자 밑에서 아예 자리를 깔고 엎드렸다. 신선해서 좀 쓰다듬어봤는데 귀찮다는 듯 냥냥 거렸던 것 같다.


지난 밤 음식의 실패로 매우 맛있게 먹은 토스트


 느긋하게 선착장으로 가니 환경보조금을 내라고 해서 냈다. 목적지에 따라 사람을 나눠서 배에 태운다. 배에 타면 구명조끼를 주는데 안 입는 상남자들도 있지만 난 입었다. 배는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른다. 파도와 부딪히면 배가 튀어 올라 엉덩이가 조금 아플 것이다. 수평선에 끝에 떠오르는 해가 정말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그렇게 말레이시아에서의 태양을 처음 보았다. 강렬한 태양. 우리나라의 태양과는 느낌이 달랐다. 뭔가 가까이 있는 듯 했고 더 뜨거웠다.


환경보조금을 내면 이걸 준다.


 멋진 풍경도 계속 보다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처음에 뷰티플 어메이징 하며 사진을 찍던 주위 사람들도 언제 도착하냐는 표정이 되어 멍하니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섬에 다가오니 물이 굉장히 맑은 것이 느껴졌다. 청록색이긴 한데 아래를 주시하면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 주변을 노니는 물고기들도 보였다. 이제 목적지에 대충 다 왔는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도 눈치를 보다가 이야기해서 사람들이 내릴 때 같이 내렸다.


이 멋진 광경도 30분 동안 계속 보면....


 선착장에서 섬으로 향하는 다리의 높이와 수면의 높이가 같아서,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을 몇 장 찍고 파도가 잦아들었을 때 펄쩍 뛰어서 모래를 밟았다. 그렇게 섬에 들어왔고 조금 걷다보니 내가 묵었던 숙소가 나왔다. 도착한 시간은 9시쯤. 체크인은 2시지만 예약한 방이 비어있어 들어갈 수 있었다. 신림동에서 어제 8시에 집을 나와 25시간 만에 끝난 이동이었다. 매우 피곤했지만 오는 내내 자려고 노력했기에 잠은 오지 않았다. 맑은 바다를 보니 피곤해도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슬리퍼를 빌려 신고, 물놀이용으로 구매한 일회용 렌즈를 착용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자. 드디어 쁘렌띠안 섬을 즐길 시간이다.


밀물과 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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